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퍼스타로 추앙 받는 불세출의 농구선수가 있다.
바로 마이클 조던이다.
그는 단순히 최고의 실력을 갖춘 농구선수이기 이전에 이미 그는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였으
며 스포츠 산업의 핵이었다.
문화적,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파급효과가 가히 압도적이었기에 아직도 그의 영향력은 너무
나도 절대적이다.
사실 농구라는 종목은 전 세계적으로나 북미 지역에서나 최고의 인기 스포츠는 아니었으며,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아마 그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농구선수가 모든 스포츠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었다
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좀 더 농구라는 스포츠 자체에 대해 구체적으로 접근해 보자.
"농구는 센터 놀음이다.", "농구는 키가 깡패다."라는 말이 있다.
사이즈에서의 우위를 통해 백보드를 장악하는 팀이 결국 게임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이클 조던은 198cm에 불과한(?) 슈팅가드이다.
NBA 평균신장이 수년간 약 2m 정도였기에 그쪽 기준으로 봤을 땐 조던도 루저인 것이다.
흔히들 센터 다음으로 중요한 포지션을 포인트 가드로 꼽는다.
그렇기 때문에 당대 최고의 센터와 포인트 가드였던 카림 압둘 자바와 매직 존슨의 조합이었
던 80년대 "쇼타임 레이커스"는 압도적인 다이너스티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는 명목상으로만 봤을 땐 센터와 포인트 가드가 취약점인
팀이었다.
두 번의 쓰리핏 모두 그러했다.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을 살펴보면 마이클 조던을 둘러싼 모든 상황들이 아이러니하다는 것
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온통 농구의 정석에서 벗어난 아이러니한 상황을 오히려 역이용하려 한 핵심적인 3
인방이 뭉치게 된다.
바로 필 잭슨 감독과 스카티 피펜, 그리고 마이클 조던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마이클 조던과 스카티 피펜이 진정으로 압도적인 플레이를 펼치던 시절은
첫번째 쓰리핏을 달성했던 90년대 초반이었다.
당시의 시카고 불스는 완벽한 프리롤의 마이클 조던과 스카티 피펜을 중심으로 한 트라이앵
글 오펜스의 환상적인 조합으로 팀 오펜스를 구축했었다.
인사이드와 아웃사이드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자신에게 유리한 미스매치를 유발시키는 마이
클 조던의 절대적 능력을 활용하기 위해 오펜스 시 페인트 존 바깥에서의 센터 역할을 그에
게 맡겼던 것이다.
반면 스카티 피펜은 오펜스 시엔 실질적 포인트 가드의 역할을 맡으면서 조던의 능력을 빌리
지 않는 상황에서의 원활한 공격을 나머지 3명의 선수들과 이끌어 나가게 되었다.
그러한 역할 분담을 통해 마이클 조던이 넣는 30득점이 최고의 가치를 발휘하게끔 연출해 낸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마이클 조던이라도 한 경기에 100점이 넘는 점수를 넣을 수는 없기에 그가 평
균적으로 기록하는 약 30점 가량의 득점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전략인 것이다.
하지만 오펜스만 뛰어나서는 경기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들은 어떻게 성공적인 디펜스를 구축했을까?
우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강력한 장신의 센터를 중심으로 팀 디펜스를 형성하는 것이 당연
하다.
하지만 그러한 빅맨 자원을 보유하지 못했던 시카고 불스의 선택은 이번에도 효율성이었다.
그냥 일반적인 정규시즌에선 조던과 피펜의 공격력과 매치업에 대한 봉쇄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지만 포스트 시즌에는 그것만으론 역부족인 팀들과도 만나게 된다.
그러한 상황에서 불스의 선택은 적절한 페이스 조절을 통해 조던과 피펜의 체력을 최대한 아
끼면서 3쿼터 중반까지 사정권 내의 점수차를 유지하면서 버티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하면서도 앞서는 상황이 되면 가장 좋겠지만 당시의 NBA는 최고의 황금기였으
며 강력한 골밑 파워를 지닌 팀이 많았기에 파이널과 같은 큰 경기에선 불스가 그 시간대까
지 열세인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페이스 조절을 해오던 불스는 갑작스레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조던과 피펜이 1선으로 올라가서 극단적인 풀코트 혹은 하프코트 프레스를 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던과 피펜의 디펜스 능력과 피지컬이 언제나 상대보다 압도적이
어야만 통할 수 있는 전략인 것이다.
상대의 컨트롤 타워를 봉쇄하면서 그들의 1번 공격 옵션을 최대한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서
그 위력을 반감시키는 것이다.
사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러한 전략이 통할 수 있었던 건 카림의 은퇴와 매직, 버드 등의
노쇠화로 인해 레이커스와 셀틱스가 조금은 약화된 시기인 90년대 초였기에 가능했던 것일
수도 있지만 어찌되었건 그러한 전술은 제대로 맞아떨어지면서 첫번째 쓰리핏을 달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쓰리핏 이후 마이클 조던은 최고의 전성기에 은퇴를 선언하게 되고 약 2년 간 농구를
떠나 야구를 선택한다.
이후 마이클 조던은 다시 컴백하지만 예전보단 체력과 운동능력이 많이 저하된 상태였다.
피펜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그들은 새로운 조력자를 필요로 하게 되고 결국 당대 최고의 리바
운드왕이자 천천후 수비왕이었던 데니스 로드맨을 파트너로 맞아들인다.
그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으며, 그 결과로 그들은 다시 한 번 쓰리핏을 달성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마이클 조던은 전형적인 성공 코스가 아닌 고정관념을 깬 파격적인 성공 시대를 열었
던 것이다.
쉽게 말해 마이클 조던과 스카티 피펜은 결코 슈팅가드와 스몰 포워드의 조합이 아니었던 것
이다.
실질적으론 농구의 가장 이상적인 조합인 최고의 센터와 포인트 가드의 조합을 새롭게 창조
해 낸 환상적인 콤비였으며 이 모든 것의 중심엔 필 잭슨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나 역시도 조던을 처음 접했던 건 나이키 광고와 슬램덩크 컨테스트에서의 프리드로우
라인 덩크를 통해서였지만 실제 경기에서의 모습은 그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참으로 아이러니한 건 그의 현역 시절엔 나 자신이 그의 팬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누군가가 그를 극복해 주길 바라면서 시카고 불스 타도를 외치던 한사람의 농구팬이
었다.
너무나 탁월했기에 질투하고 싶었으며, 그 위대함을 극복하고 싶게 했던 농구의 신 마이클
조던, 이젠 그가 너무나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