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7일, 바로 오늘이다.
31년 동안 봉인되어 있던 육상 100m 한국 기록이 드디어 갈아치워졌다.
김국영이라는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에게서 말이다.
예선에서 10초 31, 준결승에선 10초 23까지 단축하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서말구 해군사관학교 교수가 1979년 멕시코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수립한 10초 34라
는 기록은 그야말로 지난 31년 동안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군림해 왔었다.
너무 오래 묵은 탓일까?
처음엔 당연히 가장 영광스러운 상징이었을 10초 34라는 기록이 나이를 먹어 갈수록 점점
저주의 의미로 변해가기 시작한 것이다.
동양인의 유전자론 힘들다라는 비관론이 지배적일 때도 있었다.
물론 동양인은 선천적으로 어느 정도의 핸디캡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선천적 재능 탓만을 하기엔 우리와 비슷한 체격의 일본과 중국의 기록이 너무 월등
하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의 이토 고지는 10초 플랫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가지고 있다.
9초 대 진입이라던가 우사인, 아니 유세인으로 불러 달라던 볼트와 경쟁하려면 현 시점에서
의 우리가 가진 재능은 절대적으로 미약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10초 34라는 기록을 깨기에는 그 재능이 충분히 차고도 넘치는 상황이었기에 더욱
안타까울 따름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반드시 기록을 갈아치워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가 없었던 것이다.
육상에 재능이 있는 유망주들은 비인기 종목에다 굶주리기 십상인 육상을 외면하고 다른 인
기 있는 응용 스포츠 분야로 발길을 돌려 버렸던 것이다.
우스갯 소리로 차범근이나 차두리를 처음부터 육상선수로 키웠다면 이미 오래전에 기록을
경신했을 것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곤 했었다.
그러다가 어떤 특별한 계기를 통해서 충격적 반전의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를 2011년 대구에서 개최하게 된 것이다.
그로인해 우리 육상계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마라톤을 제외한 거의 모든 육상 분야에서 후진국의 자리를 지켜온 우리였기에 안방에 손님
을 초대해 놓고 남의 잔치로만 만들어 줄 순 없다는 자존심이 뒤늦게서야 발동한 것이다.
이후 우리 육상계는 조금씩 변화한다.
일단 유망주 발굴과 포상금을 통한 동기부여에 적극적 움직임을 보이게 되었다.
서말구 교수의 한국 기록을 깨면 1억원이라는 포상금을 준다는 당근을 제시한 것이다.
또한 자메이카 코치를 초빙하기도 했었고, 이토 고지의 기록 달성 조력자였던 미야카와 지
아키 교수를 대표팀 코치로 영입한 것이다.
그 때부터 우리 육상은 적극적인 투자로 인한 강력한 동기부여를 바탕으로 기록 달성자인
김국영을 비롯한 임희남, 여호수아, 전덕형이라는 경쟁자들이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며 기록
달성을 위해 매진해 왔었던 것이다.
결국 재능이 아닌 열정과 노력의 문제였던 육상 100m 한국 신기록 달성은 결국 이루어졌다.
내년 대구 육상선수권 대회가 더욱 기다려지는 행복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