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후의 영화 예술가'로 불리는 그리스의 거장,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율리시즈의 시선"은 1995년, 영화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작
품이다.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은 깐느 영화제에서의 황금종려상 수상을 자신했으나 비슷한
소재를 다룬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언더그라운드"에 밀려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
게 된다.
그 결과가 미안해서인지 몰라도 3년 뒤 깐느는 상대적으로 조금 더 미흡했던 차기작
"영원과 하루"에 황금종려상을 안겨주게 된다.
이 작품은 인간, 혹은 인간의 삶을 호메로스의 위대한 서사시 "오디세이"의 주인공인
오디세우스(율리시즈)의 여정에 빗대어 '율리시즈의 시선'을 통해 궁극의 본질을 향해
가는 과정을 앙겔로풀로스 특유의 느림의 미학으로 보여준다.
상징적 의미만이 아니라 실제로 이 영화는 그리스에서 알바니아를 거쳐 내전이 한창
인 폐허가 된 보스니아를 지나 독일에 이르기까지의 머나먼 여정을 로드무비의 이데
아라 할만큼 완벽한 완성도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마치 나 자신이 동행하고 있는 듯하게 말이다.
특히 산산조각 나버린 레닌 상을 싣고 가는 수송선과 감독 자신의 어릴적 경험을 토대
로 연출된 자욱한 안개 속의 시체더미를 지나가는 시퀀스는 결코 잊혀지지 않을 명장
면이다.
'율리시즈의 시선'은 무섭도록 시리고 날카로워서 차마 마주 볼 수 없을 듯 하지만 그
시선과 정면으로 마주친 순간, 드디어 그 길고 길었던 여정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지극히 순수한 영혼으로 돌아가야만 얻고자 하는 해답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
이다.
사실 이 영화는 너무나 입체적인 내러티브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걸 모두 읽어낸다는
건 너무 어려운 것이기에 나는 그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코스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
다.
지금 이렇게 미약하게 삶의 여정을 걷고 있는 나 자신도 달리 생각하면 오디세우스와
같은 영웅의 의미 있는 걸음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 그래서 궁극의 본질에 도달하
기 위해선 누구든 고되고 기나긴, 끝이 없을 것처럼 막막한 인생이란 여정을 한걸음씩
걸어 가야 한다는 것을 너무도 차갑게, 뼛속까지 시려오게끔 보여주고 있는 경이로운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