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시선 속에서 찬란하고 숭고한 애절함을 피어나게 하는 영화가 있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에서 '젤소미나'를 잃고나서야 그녀의 소중함을 깨닫고 생전 처음으
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잠파노'의 모습처럼 말이다.
로베르 브레송의 "무쉐뜨" 역시 그런 느낌을 받은 작품이다.
자신의 이름이 영화의 제목이라는 것조차도 사치스러워 보일만큼 처절한 현실 속에 내동댕
이쳐진 '무쉐뜨'란 이름의 10대 소녀의 삶을 비추는 카메라의 시선은 시종일관 무미건조하기
만 하다.
소녀적 감성과 욕구를 발산할 그 어떤 권리조차 부여 받지 못한 그녀의 삶은 무간지옥과도
같을 것이다.
그녀는 소녀의 몸으로 어른의, 그것도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어른의 짐을 지고 살아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녀가 잠깐이나마 본래의 순수한 소녀적 감성을 드러내는 시퀀스가 있다.
바로 범퍼카를 타는 장면이다.
바흐친의 카니발 이론이 적절하게 적용되는 듯한 이 장면에서 소녀는 범퍼카라는 카니발적
모티프를 통해 그녀 본연의 소녀적, 아니 여성으로서의 욕구 충족으로 탈관할 수 있을 법한
경험을 하게 된다.
쉽게 말해 어떤 특수한 상황 속에서 현실과는 전혀 다른 심리적 상승효과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잔인하게도 이러한 카니발적 모티프가 오히려 희망고문과 같은 효과로 작용하여 현
실로 회귀한 이후엔 그 고통이 더욱 배가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사족이지만 앞서 언급한 범퍼카 시퀀스는 남녀 간의 연애 관계를 너무나도 상징적으로 보여
준 환상적인 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
카오스 속에서 우연이 발생하고 그 우연에 의미가 부여되면서 은근하면서도 의도적인 반복
과 충격을 통해 운명을 잉태시킨다고나 할까...
인연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던 명장면이었다.
다시 '무쉐뜨'라는 소녀에게로 다가가 보자.
소녀는 '아르센'이라는 남자와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혼란과의 조우를 경험하게 된다.
악한을 구원하는 성녀의 숭고함, 강한 남성성에 대한 여성의 욕망, 일탈에 대한 소녀적 호기
심, 순결을 잃지 않으려는 지극히 순수한 본능이 복합적으로 그녀의 내면 세계를 지배하게
되면서 그녀는 한차원 성장하게 된다.
물론 여기서의 성장이라는 의미에 대해 옳고 그름의 판단을 내릴 순 없다고 생각한다.
'무쉐뜨'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다른 차원으로의 영원한 일탈을 선택하게 된다.
이런 표현 자체가 참으로 아이러니컬하겠지만 굳이 말하자면 '무쉐뜨'의 자살 장면은 너무나
도 아름다웠다.
마치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안개 속의 풍경"의 마지막 장면 같은 신비로운 마무리라는 느
낌...
무간지옥을 벗어나 파라다이스로 공간이동한 것 같은 환상적인 장면이었지만 한편으론 왜
이리 슬픔이 북받치는 것일까??
아마도 우리가 여전히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그 삶을 살아가는 자신에게서 '무쉐뜨'의 모습
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